“평창 율곡마을 역사정립 세미나” 후기

고주호 승인 2020.12.23 10:50 | 최종 수정 2020.12.28 11:12 의견 0


"평창율곡마을역사정립세미나" 참가 후기

지난 12월 3일 용평면사무소 2층 대회의장에서 “평창 율곡마을 역사정립 세미나가 비대면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평창군, 평창군의회, 평창문화원, 평창교육지원청, 용평면번영회, 용평면이장협의회, 봉평농협이 후원하고, 평창군민신문사가 주관하여 평창율곡마을가꾸기 추진위원회가 개최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판관대와 관련하여 이미 세 번의 세미나가 발표되었고, 또한 평창군에서는 판관대 정비계획까지 만드는 등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지만 그것은 판관대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모두 신사임이 율곡을 잉태하였다는 잉태지 설화설을 주 모티브(모체)로 전제하였기에 판관대의 역사적 소명에 제 역할을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도 그러한 이미지의 동일선상으로 이해하여 식상한 듯 생각할 수 있으나, 이번 세미나는 외래학자들이 지역적인 특수성의 고찰을 주장을 못하는 점들을 간파하여 지방인들의 자주적인 세미나로 그 취지와 목적하는 바는 잉태지라는 설화적 의미를 넘어서 판관대는 신사임당의 반평생(18년간)의 신혼살림집으로, 또한 율곡의 어린시절 고향마을로 “평창 율곡 고향마을 가꾸기”를 위한 판관대의 바른 역사정립을 하며 판관대는 율곡 이이선생의 고향마을이란 역사유적지로서 문화창출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판관대의 역사는 약 450년 전의 일이라 전해지지 못하는 부분에 소명에는 어려움이 많지만 “평창 율곡마을 역사정립”을 위하여 필자는 율곡이 친히 쓴 “선비행장”에 기인하여 판관대의 바른역사를 조명하며 이에 따른 실체적 역사물도 여러 가지로 규명하고 있다.

선비행장에서“혹귀임영 혹거봉평 (惑歸臨瀛 惑居蓬坪)”이라고 서술한 바 이는 “혹은 강릉에 돌아가기도 하고, 혹은 봉평에 거하기도 하였다”라고 해석되며 같은 글의 앞부분에서 “자당(어머니)께서 임영에 근친가셨다. (後慈堂歸寧于臨瀛)”라고 기술한 바, 이 글 중에 귀녕(歸寧)이란 친정 강릉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로서 판관대에 대하여 증거사료도 없는 10년설이니 혹은 4년설에 대한 여러 서술들을 모두 배제하고 율곡이 쓴 “혹귀임영 혹거봉평”의 한마디로도 평창군 봉평의 백옥포리 판관대(현 용평면)가 신사임당의 신혼살림집이자 율곡의 고향임이 극명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또한 판관대가 실제적 존재하였다는 사실에 기록으로는 1,906년 봉평의 봉산서재 중건에서 사당에 봉안과 배향의 문제에서 의암 유인석은 봉평의 추성구 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판관대가 비어 있다하니 그곳에 율옹(율곡 이이)의 사당을 짓고 봉산서재보다는 그곳에 별도로 모셨으면 하는 편지에서 판관대가 1906년에도 존속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1,660년에 현종이 사방 오리의 사패지를 내린 것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전국의 토지 측량조사가 실시되고 1916년에 이곳의 지번이 생겼으며, 토지대장 정보조사에서 약 5만여평이 오죽헌의 권영달 소유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5만여 평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 사패지란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세미나를 앞두고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로 판관대의 실제 존재를 밝힌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유학사상의 최고의 사상가로인 율곡선생을 배출한 봉평의 백옥포리(현 용평면 소재)는 성현 율곡 이이선생을 배출한 고장으로서 현재 유학은 시대말적으로 마감되는 듯 하지만 이러한 어지러운 시대에 요구되는 바른 행동과 올바른 사람으로서의 인륜적 덕목을 가르치는 학문이기에 이 가르침은 시대를 넘어서서 언제나 교육의 기본덕목으로 강조되어야 하기에 율곡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이 고장은 역사문화로서 시대적 사명감 속에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나 학자들은 흔히 새로운 문화정착에 아이콘으로는 다만 율곡을 스토리텔링화하여 레져와 관광상품을 계발(啓發)함에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려 하지만 그것은 2류의 근시안적인 행위이기에 효과가 작다 하겠으며, 용평에서의 율곡 고향마을 가꾸기는 사회의 지표로서, 자라나는 세대에 교육의 장으로 지향하여 새로운 문화론을 창출해감에는 2류라하는 레져 등의 경제성 아이콘들도 부수적으로 동반되어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하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지역민들의 자주적인 세미나는 코로라 관계로 비대면으로 실시한 바 이곳 판관대가 신사임당의 신혼 살림집이고 율곡에게는 고향이라는 내용을 널리 알리지 못하고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또한 판관대의 바른역사의 이해인 동 세미나의 리포트용 책자도 아직 시작단계라 예산 관계로 인하여 일부 프린트용 책자로 대체하였던 바 앞으로 단정한 책으로 발간하여 여러 사람이 판관대의 바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 또한 동 책은 후일에 판관대와 율곡, 신사임당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에게 제공되어 판관대의 바른역사를 인용하도록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저의 논문 말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위인으로 성웅 이순신, 강감찬, 을지문덕, 김유신 등을 말하는 바 이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위인은 모두 무인이라 이러한 문제는 문화국가로서 문화창달에 큰 괴리가 내포되기에 이제라도 우리에게 위인으로 율곡선생등 문인 지향형으로 전이되어야 할 시대적 사명감이 부여되는 것이기에, 이번 용평면에서 “율곡 고향마을 가꾸기”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서 전국 모든 국민에게 아우르는 지향점으로 그 범위는 넓고 무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번 “율곡 고향마을 가꾸기” 문화 창출은 보다 밝은 문화국가로서의 미래를 창출하는 시금석으로 그 의의가 크다 하겠습니다.

용평면과 평창군은 그간 잊혀지고 밝히지 못했던 잃어버린 율곡의 고향을 찾아서 율곡의 고향마을로 가꾸어 참신한 문화를 창출하는 것으로 이에 군민 모두가 힘을 모아서 밝고 도전적인 미래로 지향하는 노력을 경주할 때입니다.

이번 세미나에 판관대의 바른 역사 조명을 위해 멀리까지 찾아오셔서 판관대의 미래가 밝은 연구발표를 해주신 한국외국어 대학교의 박치완, 이영미 교수님. 그리고 강병수 하빈 연구소장님(전 중앙학연구원 정책실장)님에게 감사인사 드립니다.

끝으로 율곡고향마을 가꾸기에 노력해주신 용평면민들과 이를 주관한 평창군민신문에도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욱 힘써주셔서 밝은 평창의 역사문화로 자리돋움 하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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