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고향 마을(백옥포리) 컨셉트 정립과 발전전략

- 박치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평창율곡마을 역사정립세미나 제3발표

박치완 교수 승인 2021.01.11 15:11 | 최종 수정 2021.01.11 15:17 의견 0

율곡의 고향 마을(백옥포리) 컨셉트 정립과 발전전략

박치완(한국외대, GCIC 센터장)

1. 역사는 ‘왜곡’이 본성인가?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에 판관대(判官垈)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 발표에 참여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솔직히 ‘울분’도 느껴졌습니다. 아마 역사학자라면 저보다 울분이 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없는 듯, 편견은 편견대로, 진실은 진실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세상은 굴러갑니다. 세상에서는 여전히 율곡이 강릉에서 출생해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치 그것이 ‘진실’ 또는 ‘정설’인 것처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왜곡되는 것이 본래적 성질인가요? 수학이나 물리학은 결코 진실을 왜곡하는 법이 없습니다. ‘수학 왜곡’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그런데 역사는 ‘왜곡’이란 말이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아주 묘한 분과학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역사학은 “학문 내에 내재된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연구영역이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정도로 역사는, 국내외적으로, 왜곡된 채 사람들에게 각인된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국외의 경우는 구미의 식민지 지배사가 그렇고 국내에서는 특히 고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해방을 전후로 한 최현대사 부분이 그렇습니다. ‘Global History’를 탈식민적 시각에서 다시 기술하는 작업이 국제적으로 화두가 된 것도 우연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단독사가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사가 바로 잡혀야 제자리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역사학이 주변학이긴 하지만 철학이 전공인 저로서도 이 문제만큼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율곡이 나고 자란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는 ‘역사적으로’ 반드시 재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고주호 선생님이 일관되게 주장해 오신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슬기를 모아야 풀릴 수 있습니다. 이미 고주호, 정원대 선생님을 비롯한 평창의 역사연구가들에 의해, 이번 학술대회 계획에도 명시돼 있듯, “신사임당과 이원수 공은 결혼 후 백옥포리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18년간을 거주하며 율곡 이이를 비롯한 다섯 남매를 이 집에서 낳아 키웠던 사실은 <선비행장(先妣行狀)을 비롯한 문서에 분명히 기록돼 있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을 바로 잡는 일뿐만 아니라 율곡의 개인사(bibliography)에 대한 정확한 해명이기도 합니다.1) 이는 누구에게 묻더라도 같은 대답일 것입니다. ‘잉태지로서의 설화적 이야기’가 ‘출생지로서의 역사적 진실’에 우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율곡에 관한 한 강릉, 파주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 결과 이 문제는 (사)율곡학회(현재는 율곡문화원)에서도 거론한 적이 없으니, 불가사의라 아니 할 수 없겠습니다. 판관대를 소설에서처럼, 드라마에서처럼 ‘잉태지’ 정도로 언급하는 수준에 계속 머물러야만 하는 것일까요? <율곡마을가꾸기 추진위원회>에서 마련한 이번 학술대회가, 2016년 <율곡 선생 잉태지 판관대 제조명을 위한 학술 심포지움>에 이어 2019년 <판관대, 문화콘텐츠로 스케치하다>를 통해 평창군과 강원도 차원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지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왜곡된 역사(story, history)는 아무리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며, 오늘 이 자리도 바로 그 일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학술대회 취지와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감했기에 저는 비록 전공이 문화철학, 문화콘텐츠임에도 감히 이번 발표에 참여하게 되었고, 문헌적/학술적인 고증이나 주장은 다른 관계자분들께서 하실 것이기 때문에 저는 지역문화콘텐츠로서 백옥포리-판관대에 대해 정책적으로 향후 어떤 고민들이 필요하고 또 어떤 후속 작업들이 병행되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몇 가지 제안하는 선에서 발표를 준비했다는 점 미리 양해 구합니다.

2. 문화적 실천의 현장인 백옥포리-판관대의 과제

문화는 ‘삶의 표현 양식’이자 ‘의식적(儀式的) 행위의 산물’이며 ‘인간의 마지막 대법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Homo Culturans! 인간은 그가 습득하고 향유하는, 공유하고 창조하는 문화를 통해 완성되는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과 문화는 이렇게 상호구성되며 그 바탕에 공동체가 있습니다. 인간과 상호구성되면서 생명체를 유지하는 것이 문화이며 문화를 대를 이어 전승되고 실천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이 곧 문화적 실천(cultural praxis)이라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성립됩니다.2)

문화적 실천은 문서화된 기록들을 포함해 문서화될 수 없는 또는 문서화되는 기회를 놓친 구전 등(그것이 객관적인 결과물인가와는 관계없이)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전승되고 코드화됩니다. 따라서 문화적 실천은 일개인의 영웅사보다 공동체 전체의 지역사를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기술되고 표현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백옥포리-판관대의 진실 찾기 역시 몇몇 연구자의 관심사로 그쳐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백옥포리-판관대의 진실 찾기는 용평면의 관심사여야 하며, 평창군, 나아가서는 강원도, 대한민국의 관심사여야 합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과제’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이는군요. 왜곡된 이야기-역사를 바로잡는 문제이기에 ‘과제’인 셈입니다. 이러한 과제는 개인의 문제제기에 이어 공론화되는 것이 수순이며, 지방정부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3)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백옥포리-판관대의 과제는 이미 몇몇 연구자들을 통해 본 발표자 같은 일반 대중과도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에 머지않은 장래에 그 희망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특히 고주호 선생님의 「판관대의 바른 이해」만 보더라도 그 씨앗은 이미 뿌려진 것이나 진배없다고 판단됩니다.4)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 내용이나 주장이 본 학술대회의 취지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강릉 원주대학교의 국문과와 사학과에서 관련 논문들(「율곡 이이의 잉태지 ‘판관대’ 연구」(박도식, 2016); 「평창 ‘판관대’ 유적지의 전승설화 고찰」(장정룡, 2016)을 발표된 바 있고5), 한서대학교의 동양고전연구소에서 발행한 기관지에 이학주의 「평창 판관대(判官垈)설화의 문화콘텐츠 발굴 및 활성화 방안」(『東方學』 제42호, 2020)라는 논문을 학계에 공식적으로 등재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6)

앞서 우리는 문화를 정의하면서 “인간의 마지막 대법정”이란 언급했습니다. 주지하듯, 법정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곳입니다. 고주호 선생님께서 「판관대의 바른 이해」에서 강조하듯, 이제 “오죽헌의 개입으로 상실된 율곡의 고향”을 되찾는 일은 용평면, 평창군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를 게을리 한다면 ‘자연화된 거짓 믿음(naturalized false belief)’처럼 백옥포리-판관대는 영영 율곡의 “잉태지, 즉 아이 밴 장소”7)로 왜곡된 채 국민들에게 회자되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믿음이 자연화되어 유포되면 차후에는 율곡 개인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판관대의 문화적 정체성마저 모호해지고 말 것입니다. 문화적 탈영토화는 문화적 영토화의 힘이 없는 곳에서 발생하는 공동체의 비극입니다. 탈영토화는 주지하듯 지역문화의 파괴와 연결됩니다. 더 늦기 전에 재영토화를 통해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8)

<그림 2>All Different, All Unique!” -유네스크의 ‘문화다양성’ 홍보 포스터

한 사회에는 늘 소수집단, 소수의 주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소수집단의 소수의 주장은 아무리 외쳐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것이 중심-지배 집단의 논리이고 권력 행사 방식입니다. 중심-지배의 언어가 강할수록 소수 집단은 침묵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문화의 가면(cultural masks)’으로 포장된 중심-지배 집단은 대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희박합니다.9) 어쩌면 백옥포리-판관대도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래서 더더욱 공적 관심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문화적 실천을 위해 연대해야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역사적 진실 되찾기가 ‘학문 실천 운동(academic practical movement)’으로, 당사자들의 집단행동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동일 공동체 내에서도 개인차를 보일 정도로 다양한 것이 문화입니다. 그래서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유네스코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성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거나 드러났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화된 거짓 믿음으로 강릉 오죽헌이 율곡의 고향이라고 믿을 때 “아니다, 백옥포리다”라는 새로운 주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중심-지배 집단은 생리적으로 진실 앞에서도 눈을 감고 귀를 막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쌓아온 아성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왜곡이, 굳이 백옥포리-판관대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렇게 정당화되고 합리화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지만, 백옥포리-판관대를 이미 율곡의 본향과 고향으로 고착된 파주, 강릉과 차별화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의 지배 문화(Culture)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들(cultures)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문화의 본질이라는 것을 이 과정에서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문화적 실천이란 바로 이 서로 다른 개별 문화들, 서로 다른 문화자원들을 서로 배제하거나 갈등을 유발하지 않고 어떻게 ‘다름(파주, 강릉, 백옥포리)’을 모두 살릴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그림3> 참조).

“문화의 출발점은 특수성, 즉 차이에 대한 또는 유사한 일을 처리하는 상이한 방식에 대한 인식이다. [서로] 구별된 [문화적] 집단에 차이를 부여할 수 있는 곳에서만 문화 혹은 문화들이 존재한다.”10)

<그림3>: 에드가 모랭의 복합성이론에 기초한 새로운 문화관

글로벌 차원에서도 로컬국가 차원에서도,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문화가 획일화되는 것은 곧 ‘생명체로서 문화(culture as a living being)’를 죽이는 길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문화는 대차(culture difference)보다는 세차(cultural distance)에 의해 그 본질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동양문화권에서 ‘빨간색’에 대한 반응만 보더라도 문화적 세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문화는 바로 이 세차의 ‘그리고’와 ‘동시에’의 문법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화다양성을 문화혼종성과 오인해서는 곤란합니다.

문화혼종성은 철저히 중심-지배문화의 논리에 복종합니다. 중심-지배문화는 배제를 기본으로 하며, 상호성, 호혜성, 공존을 멀리합니다. 상호성, 호혜성, 공존보다 중심-지배문화를 통해 소수문화, 약한 문화가 동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문화혼종의 특징이라는 것이죠. 역설 같지만, 문화는 이렇게 강압에 의해 전파되며 국경을 넘습니다. 결국 문화혼종성은 앞서 언급한 대로 로컬의 고유한 문화를 탈영토화시키는 주범인 것입니다.11)

같은 논리로 파주, 강릉, 평창은 문화다양성에 기초해 각 지역이 보유한 율곡의 문화자원을 역사적 진실에 기초해 차별화해야 서로 성공적인 지역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전제는 왜곡된 내용을 먼저 바로 잡는 것입니다. 잉태지, 출생지가 현재처럼 애매하게 뒤섞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출생지가 뒤바뀔 수는 없습니다. 신화나 설화가 역사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옥포리-판관대가 파주, 강릉을 넘어 율곡의 문화자원을 대표하는 지역이라는 자만심도 버려야 합니다. 강릉, 파주, 백옥포리는 모두 율곡의 문화자원이자 대한민국의 유교문화자원입니다.

기본적으로 인문학도인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은 y=f(x)라는 이차함수입니다. 여기서 y값은 무엇이 결정하나요? x입니다. x값이 커져야 y값이 커지는 것입니다. 결국 y값(율곡의 문화자원)은 x값(강릉, 파주, 백옥포리의 율곡의 문화자원)이 커져야 함께 커진다는 뜻입니다. 요인즉 이런 전제로 백옥포리-판관대의 과제를 실천해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제안을 먼저 드리면서 저의 전공인 문화콘텐츠적 관점에서 몇 가지 제언을 드려볼까 합니다.

3. 문화콘텐츠적 관점에서의 몇 가지 정책적 제언

백옥포리-판관대를 어떻게 문화콘텐츠적 관점에서 컨셉화하고 발전시켜 나아갈 것인지는 먼저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의 공유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백옥포리-판관대가 특화된 지역문화콘텐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특히 장기적 플랜(long-term plan) 하의 정책적 결정/선택/투자가 중요합니다.

문화정책은 일반적으로 7가지로 구분합니다.12) 지역과 문화/예술을 연계할 것인지?, 지역과 산업을 연계할 것인지?, 지역과 민족 정체성을 연계할 것인지?, 지역과 교육 및 학습을 연계할 것인지?, 지역과 관광 또는 스포츠 및 여가활동을 연계할 것인지?

이번 학술대회의 개최 목적에도 명시돼 있듯, “율곡이 어린시절을 보낸 판관대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정립하는 것”(『선비행장』, 『봉서유고』 등의 기록대로)에 있고, 나아가 율곡의 사상을 선양하는 것이 목표라면 지역과 교육/학습을 연계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최근 대한민국의 문화유전자는 공동체문화/모듬살이에 대한 의식이 점점 희박해져 가는 것으로 통계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대표 정서였던 인내/근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정(情)의 문화, 해학의 문화마저도 세대를 불문하고 약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그림4> 참조).13)

<그림4> 지난 50년간(1970~2010) 세대별/시대별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문화적 정서) 변화추이

1) 이런 점에서 백옥포리-판관대를 전통유교문화교육 현장으로 육성해 “문치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것”14)이 가능한 계획인 것 같습니다. 마침 판관대 가까운 곳에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이 있으니, 이를 “율곡 수련원”으로 개명하는 것을 포함해15) 수련원의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를 전통유교문화교육으로 보강하는 작업부터 관계기관과 협의해 시도했으면 합니다.16) 하지만 잘 알고 계시듯, 선비-유교문화촌은 안동, 영주 등이 이미 선점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이미 선점하고 있는 선비-유교문화촌을 넘어설 만한 창의적 아이디어와 구성원들의 의지 및 정책적 지원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가치는 비용이 지출되어야 생산됩니다. 특히 콘텐츠의 가치는 소비자가 선택권을 쥐고 있기에 다른 상품과 많은 차이가 납니다.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소비하고픈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최근 소비시장에서는 ‘프로슈머 (producer + consumer)’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 경제의 특징이며, YZ세대의 풍속도이기도 합니다.17)

따라서 단발성으로 전통유교문화교육을 구상하는 것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과 의지를 가지고 진행한다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전통유교문화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기존의 유교-선비문화교육에 대한 재설계를 통해 차별화된 디지털 신세대 중심의 계획을 추진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것이죠. 더더욱 아래 <그림5>에서 보듯, 오늘날 한국인은 불확실성회피지수나 장기지향지수가 지나치게 높고 심지어는 남성성 지수마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39%로 세계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여성주도적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그림5>: 주요 5개국(중국, 일본, 인도, 러시아, 한국) 호프스테드지수 비교

이런 이유 때문에도 더더욱 새로운 유교 운동 차원에서 전통유교문화교육은 필요하고 절실해 보입니다. 교육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경쟁사회, 성과사회, 피로사회에서 길을 잃은18) 우리교육의 본원적 가치 회복을 위해서도 전통유교문화교육은 충분히 시의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관련한 특성화고등학교나 대학원대학교의 신설까지도 고려해보았으면 합니다. 세계인이 주목할만한 유교적 자원은 대한민국이 충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본, 중국, 베트남과는 비교도 안 되는 원형성을 한국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평창군의 의지입니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입니다. 문화적 실천은 교육과 연계될 때 그 미래가치가 가장 크다는 것을 굳이 강조해야 할까요.

2) 주지하듯 평창은 2018년 동계올림픽대회를 치른 곳이기도 합니다. 이미 전 세계의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지역입니다. 국내에서는 유일한 곳입니다. 해서 백옥포리-판관대를 전통유교문화교육을 외부에서 감싸고 있는 자연경관과 연계하는 계획도 함께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창은 산림자원이 풍부한 곳입니다. 산림과 웰빙을 주제로 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도 평창이 가진 자연자원을 최대한 살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평창국유림관리소에서 신림청과 공동으로 실시하는 ‘산림 바이오매스 수집단’ 운영도 그렇고19) 평창 군청에서 ‘평창산양삼 생산이력제’ 홈페이지를 구축해 외부인들에게 ‘산양삼’하면 ‘평창산양삼’을 떠올릴 수 있게 한 것도20) 모두 평창이 청정한 자연을 가진 지역이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6>에서 보듯, 여가문화의 7대 트렌드 중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에코형이 두 번째로 등위돼 있습니다.

<그림6>: 한국인이 원하는 여가 시간

에코관광은 세계적으로도 미래의 트렌드입니다, 도시의 직장생활에서 피로에 지친 직장인들이 여가를 위해 찾는 곳이 자연이란 뜻입니다. 강원도는 그 자체로 스위스의 여느 관광지에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자연자원이 수려한 곳입니다. 국내, 국외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를 홍보하고 알려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내관광이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또한 청정 자연자원의 보고인 평창을 알리는 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백두대간 선자령, 흥정계곡, 월정사 전나무숲길, 대관령 양떼목장, 발왕산 케이블카, 평창 보타닉가든, 허브나라공원을 찾아 강원도를 찾는 국내 관광객이 반드시 백옥포리-판관대를 들리도록 ‘유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림7>: 서울을 제외한 전국지역별 관광객 수 증감률(2006년 기준)

<그림6>에서 보듯(최근 자료를 구할 수 없어 인터넷에서 검색된 2006년 자료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연간 강원도를 찾는 관광객수가 ±750만 정도 됩니다. 사실 이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게다가 외국인인 관광객 수가 12.8% 정도 늘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됩니다. 대전(43.5%), 경기(27.8%), 제주(20.4%)에 이어 4위입니다. 참고로 같은 해 대구는 –26.9%, 경남은 29.9%, 울산은 –43.2%, 전남은 65.7%, 인천은 –79.7%입니다. 이 통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외국인을 공략해야 한다는 객관적 증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21)

게다가 외국인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선호하고 찾습니다. 오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합천에 외국의 크루즈관광객이 몰려드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합천에 세계적 문화유산인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이 있기 때문입니다.22)

백옥포리-판관대와 외적으로 연계된 자연자원을 동심원으로 해서 그 핵에 해당하는 백옥포리-판관대를 어떻게 전통유교문화교육과 결합해 국내외 관광객을 유혹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빠른/좋은 방법은 국제공항을 설치하고 수십여 개의 비즈니스호텔을 세우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제주나 통영 같은 아름다운 바다를 인공적으로라도 만드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23)

<그림8>: 1990년대 이후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경제 이슈

외국인 관광객을 공략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 디지털 신세대를 어떻게 유혹할 것인지 입니다.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에 따른 전격적인 사유전환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초연결 시대에 부합하는 콘텐츠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 자리에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엄지족’인 요즘 신세대는 아날로그 세대와 달리 몸으로 관광하지 않고 먼저 눈으로, 손으로 관광합니다(<그림8> 참조). 이들 세대에 대해 WEF에서 관심을 보인 이유가 뭐겠습니까? 소비력이며 미래의 중심세력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이들 ‘스마트 소비자 세대’는 아직 사회의 중심 영역에서 노동활동하는 세대는 아니지만 “세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해도 32%로 매우 높고”, 소비지출도 OC&C에 따르면 연간 약 34조대(3400 milliards des dollars)에 이른 것24)으로 조사되고 있다. 재삼 강조하지만, 전 세계가 YZ세대, 즉 C세대에 주목하는 아주 간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25) 이들은 단지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하고 부모 몰래 ‘야동’이나 보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원론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지역문화콘텐츠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를 겸비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i) 콘텐츠로서의 원본성/유일성, ii) 역사적 가치, iii) 상업적인 대중 유인 요인, iv) 원(原)주민의 적극적 참여.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백옥포리-판관대는, i) ~ ii)는 넘어야 할 산은 있지만, 언젠가는 학계에서도 대중도 자연화된 거짓 믿음을 폐치하고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고주호 선생님을 비롯한 향토연구자들이 존재하는 한 이 문화적 실천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림9>: 이야기 할머니 활동 모습

이러한 노력에 추가하여, 내년쯤에 ‘전국 문화콘텐츠 학부/대학원 중심의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관련 학회 또는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시행할 것을 제안

드립니다. 이는 iii)을 위한 마중물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매년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는데, 전국 대학 문화콘텐츠학과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전통자료(<조선왕조실록> 등)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공모전이라는 데 배울 점이 있습니다. 팀으로 참여하고 전문 시나리오 작가와 협업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26) 전국적으로 많은 스토리텔링 공모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백옥포리-판관대도 대학생들의 창의성에 기대 판관대가 잉태지에서 고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자신합니다. 소설로, 드라마로, 다큐멘타리로, 영화로, 유튜브로 판관대를 전국민에게 알린다면 판관대는 내외국인에게 사랑받는 지역명소가 될 것입니다. <대장금>이 그 교훈입니다. 한 줄 메모에서 시작된 창의력이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대표적인 K-콘텐츠로 자리 잡는 소스가 된 것입니다. <선비행장>에 나타난 “혹간 강릉에 근친가기도 하고 〔대개는〕 봉평에서 거주하였다〔살았다〕”는 것으로 충분한 창작의 소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림10>: 지역생태주의의 구성요인과 상호작용

많은 지역문화콘텐츠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원(原)주민의 적극적/자발적 참여 없이 외부인들만 일시적으로 오가는 것으로 그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진주 남강축제가 모범적인 콘텐츠라 할 수 있습니다. 원본성/역사성/상업성/주민참여를 모두 충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옥포리-판관대의 경우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i) ~ ii)를 회복/강화하고 iii) ~ iv)에 대한 공의(共議)를 모은다면 언젠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역문화콘텐츠의 고장으로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 모든 과제(제안, 계획)는 본 학술대회와 같은 연구자의 발의,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공론화, 민주적 절차를 통한 의사결정과 사업 선택, 지방정부의 정책적/재정적 지원, 관련 사업들과의 연계성이 한 데 어우러져야 해결할 수 있다(<그림10> 참조)는 것을 거듭 강조하면서, 본 발표를 마칠까 합니다. 부족한 저에게 발표 기회를 주시어 감사합니다!!


1) 주지하듯, (사)율곡학회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율곡은 “1536년 12월 26일 인(寅)시(오전 4시)에 강릉 북평촌(北坪村, 지금 강릉시 죽헌동(竹軒洞) 201번지) 외가에서 탄생. 이 때에 아버지 이원수(李元秀)공은 36세요, 어머니 사임당은 33세였으며, 태어난 방을 몽룡실(夢龍室)이라 명하고 국가 보물 제165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고 돼 있습니다.

2) 인간과 문화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Z. Bauman, Culture as Praxis, Sage, 1998 참조.

3) 이 전체 과정을 ‘생태지역주의(bioregionalism)’라고 정의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 M. Scott Cato, The Bioregional Economy: Land,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Routledge, 2012; C. Perrin, “Social Justice in Spatial Planning: How Does Bioregionalism Contribute?”, Bioregional Planning and Design, Vol. 1, 2020; S. Frenkel, “Old Theories in New Places? Environmental Determinism and Bioregionalism”, The Professional Geographer, Vol. 46, Iss. 3, 1994.

4) 이는 2020년 강원문화원/평창문화원 공동 주최 공모전 제출한 논문이기도 함.

5) 이 2편의 논문은 2016년 평창문화원 주최의 학술대회(“율곡 선생 잉태지 판관대 재조명을 위한 학술심포지움”)에서 발표된 것임.

6) 물론 이 논문은 본 학술대회 주제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문제와는 무관하며, 목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백옥포리가 ‘잉태지’라는 전제로 이를 문화콘텐츠적으로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지에 초점이 있습니다: i) 판관대와 여행, ii) 주막의 역할과 사랑의 삼각관계, iii) 합궁의식, iv) 주모의 능력과 예언, v) 선과 악의 대결, vi) 풍수. 이렇듯 왜곡된 스토리는 계속 왜곡된 스토리를 재생산하기 때문에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 판관대라고 할 때 대(垈)는 별장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별장 개념으로 지어놓고 한 동안 살았던 집터”라는 자유-해석을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같은 논문, p.112).

7) 이학주, 같은 논문, p. 130.

8) 박치완, 「탈영토화된 문화의 재영토화」, 『철학연구』 제42호, 고려대학교철학연구소, 2011 참조.

9) M. Renard et al., “Cultural Masks: Giving Voice to the Margins”, Administrative Theory & Praxis, Vol. 25, No. 4, 2003, p. 499.

10) . 프리드먼, 『지구화 시대의 문화정체성』, 2009 참조.

11) 박치완, 『호모 글로칼리쿠스』,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콘텐츠원, 2019, pp.86~97 참조.

12) 참고로 1998년 4월 스톡홀름에세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회의에서는 문화정책을 다음과 같이 7개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민족적 정체성(Ethic identity), 문화유산과 예술(Heritage and the arts), 교육과 학습(Education and learning), 자연적이고 인공적인 경관(Natural and man-made landscapes), 대중매체와 문화산업(Mass media and cultural industries), 관광(Tourism), 스포츠와 레저활동(Sports and leisure pursuits).

13) 보다 상세한 언급은 박치완, 「한국인의 문화유전자, 그 연속성과 단절의 변화 추이 탐색」, 『인문학논총』 제34집, 경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참조.

14) 고주호, 앞의 글, p.50.

15) 같은 페이지.

16) 현재 교육프로그램은 주로 자연 속에서의 체험/탐험/모험 캠프가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입니다(https://pnyc.kywa.or.kr/ 참조)

17) 이에 대해서는 빌 퀘인, 『프로슈머 파워』, 안보름 옮김, 에스북, 2017 참조.

18) 이에 대해서는 한병철, 『피로사회』,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2 참조.

19) 관련 기사는 ≪참뉴스≫ 2020년 7월 13일자 기사 참조.

20) 관련 기사는 ≪News Who≫ 2020년 6월 9일자 기사 참조.

21) <그림6>은 인터넷 자료인 관계로 다소 오래되기는 했습니다만, 2012년 자료를 보아도 강원도를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 수는 73,519,872명오로 다소 감소하기는 했지만,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 관련 기사는 ≪Korea 뉴스≫ 2017년 5월 4일자 기사 참조.

23) 세계적인 국제도시는 모두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는 창조도시(creative city)의 기본요건이기도 합니다.

24) E. Hu, “Les 6 clés pour comprendre la génération Z”, Business Insider France, le 28 jan. 2019 – https://www.businessinsider.fr/6-cles-pour-comprendre-la-generation-z/.

25) 물론 C세대가 아직 소비를 통해 자신의 욕구는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삼포세대’, ‘헬조선’과 관련한 담론과 함께 널리 회자되기도 했고, 일본에서는 ‘사토리 세대’로, 유럽에서는 ‘1000유로 세대’로 불리기도 함.

26)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대학생 중심의 공모전에 이어 2020년에는 전국 204개 시군에서 할머니 1000명을 선발해 제12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사업이 시작되었으며, 할머니 수료생들은 2016년부터는 거주지역 인근의 유아교육기관에서 본격적 활동을 시작해 노인 일자리 창출에도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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