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화리 쌍굴 유적(평창 상고사)

평창의 하늘이 열리고,,, 평창의 시공(구석기 유적)

高 柱 浩 승인 2021.07.25 14:40 | 최종 수정 2021.07.26 23:29 의견 1


(평창상고사) 기화리 쌍굴 유적

(기화리 쌍굴 전경 모습)

(1) 기화리 쌍굴 연혁

1. 기화리 쌍굴유적의 조사 연구

동굴운 선사인류의 중요한 생활공간의 하나였고, 지금은 선사문화를 연구하는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문화유적이다. 특히 석회암 동굴은 동굴안 쌓임층이 알칼리성을 띠고 있어서 뼈 유물을 화석화하고 오랫동안 보존하는데 적합한 환경을 띠고 있다. 따라서 동굴유적에는 많은 뼈와 유물이 출토되며 이를 통하여 과거의 기후와 동물상과 인류의 기원과 이동과정 그리고 문화행위를 살필 수 있다.

연세대 박물관은 이러한 동굴유적 조사로 1973년부터 1980년까지 7차에 걸쳐 제천 점말동굴에서 남한에서 최초로 구석기 동굴 유적을 발굴 조사하였으며 청원 두루봉동굴, 단양 상시바위그늘, 단양 금굴, 연당 피난동굴에 이어 2007~8년 기화리 쌍굴 조사를 통하여 신셍대 4기 갱신세 동물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동굴유적의 체계를 마련하여 구석기 문화와 자연환경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 굴 입구 내부 전경)


2. 기화리 쌍굴 위치

기화리 쌍굴에는 구석기 말기의 선사 유적이 존재한다.

기화리 쌍굴은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 산1번지 남쪽사면 바위 절벽위에 위치하며, 동굴의 해발 높이는 300m로 현재 하천에서 50m 위에 위치한다. 하늘굴 입구는 너비 7m, 높이 5m의 무지개형 입구로 길이는 70m이며 완만한 10도의 경사를 가지며, 땅굴은 입구 크기가 너비 16m, 높이5m이고 바닥 기울기가 35도이며, 두 굴은 하늘굴 15m지점에서 이어진다. 쌍굴의 입구는 두개로 남서방향의 하늘굴과 남쪽방향의 이랫쪽 땅굴로 나누어지며, 동굴 아래엔 카르스트 지형으로 용천수가 솟아 창리천으로 흐르는데 추운 겨울에도 얼지않아 선사인들에겐 유용한 식수로도 사용되었슬 것이다.

3.기화리 쌍굴의 지질구조와 자연환경

이곳일대의 지질구조는 대부분 고생대 퇴적암류인 조선누군층과 평안누군층의 암석으로 유적 주변에는 조선누군층에 속하는 영월층군의 영흥층이 넓게 퍼져 있으며 이를 부정합으로 덮고있는 평안누군층이 분포하고 있다. 쌍굴은 영흥층 석회암지대에 형성된 동굴이며, 하천지대의 낮은 층은 신생대 4기의 퇴적층이 기반암을 부정합으로 덮고 있으며, 유적의 북서쪽 평창읍 일대는 선 캠브리아기 화강 편마암층과 정선군층의 정선층이 분포해 있다(한국동굴 연구소 2005))

기후로는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남한강 상유의 내륙산간의 지형적 특징으로 계절에 따라 온도차이가 크고 겨울에는 혹한과 많은 강설량을 나타내며 여름은 짧다. 연 평균 기온은 10,8℃, 연중 최고기온은 37,2℃, 최저기온은 -23,5℃이고 강수량은 1,244mm이고 이중 여름에 집중해 내린다. 눈은 평균 11월 하순부터 이듬해 3월 하순까지 관측되며 20cm이상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서리는 10월 초순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 내린다(영월기상청 인터넷 자료. 2014

4. 주변지역의 선사유적

기화리 쌍굴 유적과 가까운 남한강 수계에 위치한 영월군에서는 후탄리 퇴적층에서 찍게, 몸돌, 격지등ㅇ 발굴되었고 남면 북쌍리문개실과 남애, 삼옥리, 덕포리, 연하리, 영흥리에서 갱신세 토양의 발견과 뗀석기가 찾아졌고 방절리납골유적, 연당 피난동굴, 특히 삼옥리 유적은 동강 하안에 위치하며 기화리 쌍굴로 부터 직선거리 10,5km 떨러져 있고 석회암 암반사이 돌리네 지형에서 245점의 석기가 발굴되었다.

평창군에서 조사된 구석기 유적은 평창읍 도돈리 평창강 북쪽 구릉에서 뗀석기가 발견되었다(1990)

신석기 시대 유적은 주진강 유역에서 채집을 시작으로 후평리 빗살무늬 토기 채집등 많은 발굴과 특히 2010년대 이후에는 방림~ 영월 국도공사 현장에 시굴조사를 통하여 후평리, 주진리, 방림리, 도돈리. 천동리, 종부리 유적을 발굴하였다.

(※ 편집자 주- 이번 평창학 연구소의 평창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러 고고문화원에서 방림- 영월간 국도 공사 현장에 시굴한 각 고고문화원의 보고 조사서를 토대로 앞으로 여러 항목으로 평창의 신석기, 청동기 발굴조사서를 토대로 평창역사를 서술해 나가겠습니다)

(2) 기화리 쌍굴유적 조사

1. 조사개요

◆ 2007년 연세대박물관 팀은 한국동물학 연구소의 자료(2005년)를 바탕으로 2007년 4~6월에 평창군, 영월군 일대에 있는 여러 동굴을 답사하고 유적동굴의 가능성이 높은 기화리 쌍굴을 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 2007년 8월 평창군으로부터 토지사용에 협조를 얻고 9월에 문화재청에서 발굴허가(허가번호 2007-642)

11월 10일부터 발굴을 시작하여 이듬해1월 혹한기에 조사를 중지하고 2월 중순에 조사를 재 착수하여 3월14일까지 80일간 조사를 하였으며 조사면적은 36㎡를 조사하였으며 조사 마무리는 5월 중순까지 하였다.

◆ 조사단 구성

단 장 박영철 (연세대학교 박물관장)

지도위원 이융조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최복규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박희연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한창균 (한남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

배기동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 사 원 최미노, 윤현진, 김현진, 정승은

※ 평창군 협조

평창군 문화관광과 과장 신종해, 학예사 박광식, 기화리 이장 김준하외 모든 마을주민들이 숙소에서부터 본 조사를 원할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였다.

(* 필자 주 : 평창군은 토지사용 허가시 조건사항으로 평창에 박물관건립시나 이에 준하는 조건이 조성시 유물반환의 이면서식은 있었는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2, 조사내용

1) 석기및 굴 바깥돌

* 석기종류- 안팍날 짝개, 여러면석기. 긁개, 밀개, 몸돌, 격지

* 석질은 규암, 규질 편마암, 안산암질 응회암등

* 크기; 대부분 50~50에서 100mm정도임.

( 밖에서 들어온 자갈은 총 39점이며 온전한 자갈 5점, 깨진 자갈이 33점이다)

<출토석기>



(긁개)

2) 동물뼈 유물
* 불에 탄 뼈,

* 자른자국을 지닌 뼈,

* 깨진뼈

< 동물뼈 화석>

*Ⅳ지층 출토 동물 뼈 화석 ( 나머지 지층은 이하 생략)

원숭이( 앞니, 발가락뼈 둘째마디. 최소마리수 1마리), 꽃사슴(아래앞니, 발목뼈, 송곳니 합 14점. 최소 마리수 3마리), 사슴(왼쪽 아랫 송곳니 2점최소 마리수 2마리), 노루(인쪽 둘째 앞니 2점), 고라니. 사향노루, 산양, ( 앞니 1점 , 옆니2점, 어금니 3점, 손등뼈 . 최소 마리수 1마리) 코뿔이( 위 셋째 어금니 조각 1점, 윗 어금니 볼쪽 조각3점), 호랑이( 앞니1, 왼쪽 네째 어금니2, 발가락뼈 1점, 최소마리수 1마리) , 곰(손목 마름모뼈 1점), 산달( 아래 첫째 어금니) , 오소리, 토끼, 새, 두더쥐(위 팔뼈 좌우, 각 1점), 갈박쥐(어금니뼈 1점), 토끼털관 코박쥐, 표범 , 어류

* 각 뼈화석의 크기는 300~50mm이내임 )

* 4개층 모두 출토 뼈의 합계는 298점이고 마리수는 72마리.

( 동물뼈 화석)

( 운숭이 발등뼈와 손등뼈)


3) 층위 (퇴적두께 합은 150cm)

Ⅰ지층- 석회마루층

Ⅱ지층 - 명적색 토양층(5YR4/6)

Ⅲ지층 - 황적색토양포함 낙반석층

Ⅳ지층 - 적반색포함 낙반석층

(발굴 완료후 모습)


4) 절대연대

절대연대측정으로 OSL연대측정(토양사료)와 방사선 연대측정AMS(뼈 유물, 숯사료, 토양사료)를 실시하였다.

Ⅲ지층의 OSL값은 B.P.45,000±5,000(250~125㎛)이고 AMS 연대값은 B.P.15,820±290, B.P 20,500±300이다.

Ⅳ-1지층 OSL값은 B.P.49,000±2,000(250~125㎛)이다.

Ⅴ지층에서 OSL값은 B.P.58,000±3,000(250~125㎛)이고 AMS 연대값은 B.P.29,700±400, B.P 34,990±410이다.

(* 편집자 주 - 토양의 측정값은 45,000년 전에서 58,000년 전까지 나타내며 유물의 방사선 측정 연대는 15,000년전부터 45,000년전의 측정값을 가진다)

(3) 맺음말

평창 기화리 쌍굴유적에서는 총 8개층이 확인되었으며 그중 4개 지층에서 동물뼈가 수습되었고 3개 지층에서 석기와 굴 밖에서 들여온 돌이 출토되었다.

석기와 굴 밖깥돌, 불탄 뼈와 자른자국을 지닌 뼈의 확인과 뼈의 타격과 잔손질도 확인함으로써 인류가 기화리 쌍굴을 생활공간으로 이용하였슴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B8칸 주변에서는 불먹은 깨진 자갈과 숯이 확인됨으로서 오랜기간동안 여러차례 인류가 이 동굴을 거쳐갔슴을 알 수 있다.

기화리 쌍굴유적은 동굴 뼈 화석과 구석기의 뗀석기가 같이 확인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향후 지속적인 조사와 체게적인 연구가 이어지면 구석기 시대의 자연환경 복원과 함깨 석기문화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상--

( 본 글은 연대박물관의 기화리 쌍굴 조사 리포트에서 발췌한 기록으로 평창학 연구총서에 기록함입니다. 다음편 2부에서는 기화리 구석기 말기의 선사유적의 일반 구석기 역사와의 비교론속에 기화리 쌍굴역사는 3~4만년전에 이땅의 선인들과 우리의 만남은 어떠한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제반 문제를 서술하겠습니다)

자료 출처 ; 평창 기화리 쌍굴유적 (GHIWARI TWO CAYE STTE, PYEONGCHANG)

연세대학교 박물관

( 작성자 ; 高 柱 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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