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질 지명을 찾아서

정원대 향토사학자 승인 2021.07.29 16:07 | 최종 수정 2021.08.14 15:47 의견 0

권두문 군수의 『호구일록』 에는 "임진(1592년) 음력 3월에 평창군수로 임명받고, 그 해 4월에 왜란을 당하였다.(후략)"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9월9일자 일기에는 "식후에 사오질(沙五叱) 고개를 넘어가다가 고개 위에서 평창에 갔던 서진(西珍)이가 이끌고 온 평창관리 손수천, 평창관노 만천, 학지 등을 만났다. 말에서 내려 서로 붙잡고 울었다."라고 되어 있다.

사오질은 어디인가?

▶1987년 답사에서 입탄리 2반 주민들은 '영월 주천면 상판운리' 넘어가는 고개를 '사오치 혹은 새오치'라고 하였다.

▶1912년 발행한 5만분의 1 지도에는 '오치 鰲峙'로 기록되어 있다. 이 오치가 권두문 군수의 기록에는 사오질(沙五叱)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호구록에는 원주감영에서 왜적에게 잡혀있다가 탈출하여 평창으로 돌아오는 길에 권두문 군수가 사오질고개에서 말에서 내려 평창관리 손수천, 관노 만천, 학지 등과 같이 서로 붙잡고 울었다고 전한다.

□ 9월10일 (맑음)

사현(沙峴; 모래재) 넘어 약수를 지나니 날이 환하게 밝았다.

▶ 사현고개 입구에서 조둔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아침동 兒枕洞'으로 불려지고 있으나, 1912년 5만분의 1지도에는 '아침동 峨沈洞'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고개는 입탄리에서 약수리로 넘어 가는 고개로서 (입탄리1반) 오늘날 전해오는 이야기는 권두문 군수가 현 입탄분교(폐교) 앞을 지나 사현 정상에 오른 후 모래고개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약수리를 지나 평창향교에서 하루를 머물렀다는 기록이 호구록에 있다.

지역주민들은 입탄리1반을 소구룬이로 부르고 있으나 2015년 발간된 『평창군지명지』와 2000년 발간된 『평창군지명유래』에는 소동원(小洞院)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평창읍지에는 서 10리에 지상원이 있다고 되어 있으며, 다른 기록에는 소동원이란 명칭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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