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학자료] 장서각 1892년 평창군지

- 18장 : 지도2장포함

전형민 승인 2021.08.04 13:09 | 최종 수정 2021.08.04 18:04 의견 1

크기(cm) 31.5 X 22.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5×16.8㎝

· 인장 藏書閣圖書印


정의

1898년(광무 2)경에 편찬된 강원도 평창군의 지역 정보를 정리한 지리지이다.

서지사항

본문 첫 장의 서명은 ‘平昌郡誌’이고, 표제는 ‘平昌邑誌 江原道’이다. 표지 장황은 황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고, 얇은 주황색 실로 선장하였다. 본문은 8행의 괘선을 직접 그어 행당 19~24자에 맞추어 해서로 작성하였다. 부분적으로 첨지를 붙여 내용을 보강하였다. 본문 맨 앞에는 먹색의 회화식 지도 1장이 그려져 있다. 지질은 일반적인 楮紙를 사용하였다. 책수는 18장 1책이다. 본문 맨 앞에 ‘藏書閣圖書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전체 목록은 없고, 권두에 평창군 지도가 있다. 내용 구성은 坊里, 道路, 建置沿革, 山川, 風俗, 姓氏, 人物, 節義, 結摠, 戶口, 糶糴, 軍額, 宮殿, 陵墓, 院宇, 公廨, 樓亭, 寺刹, 烽燧, 鎭堡, 形勝, 古蹟, 官員等品, 俸給, 先生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창군은 지금의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과 미탄면, 정선군 신동읍 일대에 해당한다. 건치연혁에 따르면 본래 고구려의 郁烏縣이었고, 신라시대 白烏로 고쳐서 奈城郡의 領縣으로 하였다. 고려시대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原州의 屬縣으로 하였다가 1297년(고려 충렬왕 25)에 縣令을 두었다. 우왕 때에 총애하는 宦者 李信의 고향이라고 하여 知郡事로 승격시켰으나 뒤에 다시 현령으로 하였다. 1392년(태조 원년) 穆祖 孝妃 고향이라고 하여 다시 높여 郡으로 하였다. 방리에는 5개 面과 각 면에 해당하는 16개 洞里 들의 이름과 동리별 관아로부터의 거리가 기록되어 있고 호구 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본서의 편찬 연도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先生案 말단에 嚴柱沆의 遞去日이 1897년 12월로 되어 있어 그 이후인 1898년경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창을 다룬 읍지로 1802년(순조 2)경에 편찬된 『平昌邑誌』, 1829~1831년(순조 29~31)경에 편찬된 『關東誌』 5冊에 실린 「平昌郡邑誌」,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關東邑誌』 4冊에 실린 「平昌郡誌」가 있다. 본서는 1871년에 편찬된 『關東邑誌』를 저본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지만, 郡名, 形勝, 官職, 堤堰, 倉庫, 物産, 橋梁, 均稅, 大同, 田稅, 旱田, 水田, 驛院 등의 항목이 누락되어 있어, 여러 읍지 중에 취사선택하여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본서에는 여타의 읍지에 없는 先生案 175명의 이름을 수록하고 그 아래에 수령의 到任과 遞歸 시기를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이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홈페이지 수록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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