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학자료] 이색(李穡),"오대 상원사 승당기(五臺上院寺僧堂記)", 동문선 東文選 권75, 기(記)

전형민 승인 2021.09.28 23:01 | 최종 수정 2021.09.29 10:50 의견 0
오대산지도


석씨 영로암(英露菴)은 나옹(懶翁)의 제자이다.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상원(上院)에 들어와 승당(僧堂)이 터만 있고 집이 없음을 보고 곧 탄식하며 말하기를, “오대산은 천하의 명산이요, 상원은 또한 큰 사찰이다. 승당은 성불(成佛)한 곳이요, 시방의 운수도인(雲水道人 행각승)이 모이는 곳인데 사찰이 없을 수 있는가.” 하고, 이에 사방으로 쫓아다니며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인연을 맺기를 구걸하니, 최 판서(崔判書) 백청(伯淸)의 부인 안산군부인(安山郡夫人) 김(金)씨가 듣고 기뻐하여 최와 더불어 모의하고 돈을 내어 희사하였는데, 부인이 스스로 희사한 바가 컸다 한다.

병진년 가을에 시작하여 정사년 겨울에 공역을 마쳤다. 그 겨울에 승려 33명을 맞이하여 십년좌선(十年坐禪)을 시작하였는데 5년째인 신유는 곧 그 대반(大半)이다. 성대하게 법회를 열고, 그 정성을 다하도록 하니, 그해 11월 24일에 해가 이미 넘어갔는데 승당이 까닭없이 저절로 밝은지라, 여러 사람들이 그 까닭을 괴이하게 여겨 그 스스로 밝게 된 바를 탐구하니, 성승(聖僧 승단 중앙봉 안에 앉힌 좌상〈坐像〉) 앞으로부터 촛불이 나와 있어 여러 사람들이 드디어 크게 놀랐던 것이다. 이제 그 불꽃을 산중의 여러 암자에서 지금까지 서로 이어 나왔는데 세상에서 말하기를, 이는 김씨의 지성의 소치라 한다.

김씨가 그 일을 눈으로 직접 보고는 더욱 느끼고, 더욱 믿고, 더욱 그 교를 높여, 노비와 토지를 바치어 상주(常住)할 자본으로 삼았다. 뒷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 길이 없을 것을 두려워하여 그 기문을 색(穡)에게 구하였다. 색도 또한 놀라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이런 일이 있었던가, 내 전에 듣지 못한 바이다. 대저 등(燈)과 초[燭]는 심지가 있고, 기름과 밀[蠟]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불이 있은 연후에 광명이 나오게 마련이다.” 하였다. 이제 불을 붙이지 않아도 스스로 밝아진 것은 부처의 신령함이 아니면 어찌 이루겠는가. 부처가 비록 신령하다 하더라도 또 아무런 연유도 없이 그 신령함을 나타냈으니 김씨의 이름이 전함은 지당한 일이다. 승당의 기문은 짓지 않을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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