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 < 금강산 유람기/ 평창 기록 발췌>

高 柱 浩 승인 2021.09.29 17:52 | 최종 수정 2021.10.01 11:35 의견 0

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 < 금강산 유람기/ 평창 기록 발췌>

낙전당(樂全堂) 신익성(申翊聖)

이 자료의 번역은 한국문집총간 제93책에 실린 신익성의 『낙전당집(樂全堂集)』 권7 「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를 저본으로 삼았다. 이 저본은 1681년 간행된 것으로 규장각 장본(藏本)이다.

▪일시 : 1631년

▪일정 : 관왕묘-도봉서원(3박)-철원-김화-단발령-장안사-마하연사(1박)-비로봉-백련암-만경대-유점사-신계사-삼일포-만경대-양양 낙산사-상운역 -강릉-(9/15일)경포대-한송정-대관령-횡계-오대산 상원사-청심대-용진

신익성(申翊聖, 1588-1644)의 자는 군석(君奭), 호는 낙전당(樂全堂)·동회거사(東淮居士),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임진왜란 때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올랐으며, 1606년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이 되었다.

1631년(44세) 가을, 휴가를 얻어 고성(高城) 온천(溫泉)에 목욕한 뒤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고 강릉(江陵)을 거쳐 오대산(五臺山)에 올랐다가 섬강(蟾江)에서 배를 타고 한강(漢江)을 따라 돌아왔다.

◆ 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 /신익성(申翊聖, 1588-1644)

한송정(寒松亭)은 옛날에 신선과 진인(眞人)들이 노닐며 쉬던 곳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단약을 만들던 아궁이와 우물이 있다. 푸른 소나무와 흰 모래가 진실로 정토였는데 해변에는 이와 같은 곳이 또한 적지 않았다.

대관령에 올라 고을의 집들을 보니 작은 것이 개미 같고 경포호는 한 말[斗]들이 같았다. 바야흐로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긴다’라고 한 것을 알겠다.

대관령은 웅장하다고 할 만한데 강릉으로부터 곧바로 고개 위까지는 사십 리 정도 떨어져 있다. 대관령을 넘어서면 횡성(橫城)의 경계인데 여기서부터 바야흐로 평지이고, 그 사이의 역들은 모두 대관령 가는 길인데 백 이십 리 정도 된다.

강릉의 경계 안은 가을빛이 정말 아름다워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단청과 같다. 횡계(橫溪)에 도착하니 벼랑과 골짜기가 쓸쓸했다. 서리가 내린지 오래 되어서 나뭇잎은 모두 다 떨어졌다. 강릉과의 거리는 수십 리에 불과했는데 날씨는 전혀 달랐다.

오대산의 앞 들판은 성평(省坪)이라고 부르는데 어림대(御林臺)가 있다. 어림대는 작은 언덕이다. 세속에서 전하기를, 세조께서 오대산에 행차하셨을 때 여기에서 말을 머물면서 문인과 무인들을 선발했는데, 무사를 뽑을 때에 활과 말로 시험하지 않고 소를 타고 비탈길 아래로 달려가게 하여 떨어지지 않는 사람을 합격시켰다고 한다. 그러므로 강릉에서는 소를 타고서 급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 1帖 2幅, 오대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88년??
30 x 43.7 cm. 개인소장

오대산의 크기는 금강산과 비교하면 제나라에 있어 추나라 정도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봉우리가 둥글고 흙이 많아 물과 바위들이 특이하게 빼어난 곳은 없다. 유독 우동수(于同水)는 하나의 작은 절구 정도인데도 한강의 근원이 되니 이상했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물이 아주 특이하다고 하는데 내가 한 모금 마셔보니 달고 차가웠으며 차를 끓여 마시니 더욱 좋았다.

상원사(上院寺)는 세조의 원찰로 규모가 크고 화려한 것은 비길 데가 없다. 보관하고 있는 그릇들이 아주 많았으며 하나의 흰 병풍은 청지(淸之)가 손수 쓴 글씨여서 진귀하다고 할 수 있다. 월정사의 중문(重門)에는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의 오언 율시 두 수가 걸려 있는데 읊조릴 만했다.

오대산은 기나무와 가래나무가 수풀처럼 울창한 곳으로 하늘에 닿아 해를 가릴 정도로 큰 것은 혹 수십 아름이나 되었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바다를 구경한 사람에게는 여간한 물은 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 또한 오대산의 나무들을 보고 여간한 나무는 나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월정사에는 선(禪)에 대해 말할만한 승려가 없었다. 동쪽의 관음암(觀音菴)에 곡기를 끊은 노숙한 승려가 살고 있다는 것을 듣고 계획을 세워 찾아갔다. 이름은 성정(性淨)이며 나이는 68세로 겉모습은 흙과 나무 같았으며 암자에서 나오지 않은 지 7년이 되었으나 말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은 지가 오래 되었다고 했다. 내가 방편어(方便語)로서 질문을 하니 드디어 눈을 뜨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기를 “나으리와 같이 이야기할 만합니다.” 라고 하였는데, 대답하는 것이 메아리 같다.

나는 승려를 좋아하는 버릇이 있는데, 승려 또한 나를 정성스럽게 대해주는 자들이 많다. 서산대사 이후로 유명한 승려들을 보지 못한 이들이 없었고, 비록 아직 보지 못한 자라도 그 계행(戒行)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또한 금강산에서부터 참선하며 살고 있는 승려들을 두루 보았지만 성정만큼 지행(知行)이 모두 높은 승려는 아직 있지 않았다. 그가 입정(入定)하여 파하지 않았을 때는 오래 된 우물과 같았으나 이미 접하여 끌리게 되면 정신이 깨끗해지고 맑아지며 말이 고매하여 비록 크게 의심스러운 생각도 한마디로 이를 해결하였다. 그 지조와 기개를 보니 한 세상을 뛰어넘기에 충분하였다.

내가 묻기를 “사교(四敎)에는 공안법(供案法)이 없는데 조주(趙州)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의 수행법은 사교를 법 삼지 않고 다만 조주의 면목만 의지하고 있으니 이와 같이해서 도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성정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선비께서는 능히 도리(道理)를 아십니까? 선가(禪家)의 설에 청형(聽瑩)이 있는데 가짜 선비들은 그 증명이 됩니다. 공자와 맹자도 단지 제자와의 문답으로 인하여 설파하였고, 송나라 유학자들이 비로소 주경(主敬)의 설을 내놓았습니다. 유가의 주경이 바로 선가의 공안의 의미입니다. 대개 성인은 시대가 멀어지면 그 말도 없어져 큰 도리가 황량하게 되고 인욕이 천리를 없애게 됩니다. 유가나 불가가 모두 마땅히 마음을 구해야 하는데 마음을 구하는 요체는 욕심을 없애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써 가르침으로 삼아 유가에서는 경(敬)으로써 하고 불가에서는 무(無)로써 하지만 인욕을 없애고 뜻을 정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인욕이 깨끗하게 없어지게 되면 천리는 저절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고개를 넘는데 바위가 가로 막아서 눈을 들고 볼만한 좋은 경치가 없었다. 청심대(淸心臺)에 도착하니 매우 높고 상쾌했다. 청심대 옆에 우물이 있는데 또한 이름도 우동이었다. 물맛이 매우 좋아 오대산의 물과 구별할 수가 없다.

대화역(大和驛) 옆에 석굴이 있는데, 그 입구는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지만 그 속으로 들어갈수록 높고 커서 수 리를 가도 끝이 없으며 옆의 동굴도 측량할 수가 없다. 불을 가지고 비추어 보니 바위틈이 기이하여 형용할 수가 없다. 아래에서 여울 소리가 들렸지만 흐르는 물이 보이지 않았으니 땅 속에 반드시 흐르는 물이 매우 클 것이다. 종유석은 엿가락 같아 보였는데, 동굴 문을 나서면 바위처럼 견고하니 기이했다.

원주와 횡성 사이의 촌락들은 쓸쓸하고 경치 또한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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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眞人) : 도교(道敎)의 깊은 진리(眞理)를 깨달은 사람을 이른다.

*우동수(于同水) : 권근(權近)이 지은 「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 기(五臺山西臺水精菴重創記)」에 “서쪽의 누대 아래에 함천(檻泉)이 솟아나는데 빛과 맛이 보통 물보다 낫고 물 무게도 또한 그러하다. 그 물을 우통수(于筒水)라고 하며 서쪽으로 수백 리를 흘러서 한강(漢江)이 되고, 바다로 들어간다. 한강이 비록 여러 곳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모인 곳이나, 우통수가 중령(中泠)이 되며 빛과 맛이 변하지 않아서 중국의 양자강(楊子江)이 있는 것과 같으며, 한강이라는 명칭도 이 때문이다.”[西臺之下, 有檻泉涌出, 色味勝常, 其重亦然. 曰于筒水, 西流數百里而爲漢江, 以入于海. 漢雖受衆流之聚, 而于筒爲中冷, 色味不變, 若中國之有楊子江, 漢之得名以此.]라는 기록이 있다.

*청지(淸之):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용(瑢)의 자이다. 학문을 좋아하고 시문·서·화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칭하였다.

*임억령(林億齡) : 1496-1568.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 1553년 강원도 관찰사를 거쳐 1557년 담양 부사가 되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도량이 넓고 청렴결백하며, 시문을 좋아하여 사장(詞章)에 탁월하였다.

**바다를……않는다 : 『맹자』 「진심(장盡心章)」에 맹자가 이르기를 “공자가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겼으니,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다른 물은 물이 되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 종유한 사람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 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 難爲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사교(四敎) : 여러 설이 있으나 보통 능엄경,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의 4과목을 강원에서는 4교라고 한다.

* 공안법(公案法) : 선가(禪家)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의도적으로 의문의 말을 주어서 대오(大悟)의 묘경(妙境)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교육적 과제를 말한다. 즉 스승이 제자에게 문제를 던져 인위적으로 촉발의 기회를 만들어주어 깨닫게 하려는 데서 발달 된 것이다.

* 조주(趙州) : 778-897. 중국 스님. 임제종. 남전보원(南泉普願)의 법제자. 이름은 종심(從諗), 속성은 학(郝)씨. 당나라 조주 사람이다. 조주(趙州)의 관음원에 있었으므로 조주라 한다.

* 청형(聽瑩) : 귀로 듣고서도 그 의미를 모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 청심대(淸心臺) : 현 평창군 진부면 마평리에 있다. 오대산 우통수에서 발원한 한강의 상류인 오대을 따라 절벽을 감싸 안고 있는 절경이다. 1418년 태종 때 강릉 도호부사 양수(梁需)의 부실(副室) 청심(淸心)의 정절을 기리고자 청심대라 명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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