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일록(東征日錄) <금강산유람록/ 평창기행편>

거역흘점

高 柱 浩 승인 2021.10.02 11:39 의견 0

동정일록(東征日錄) <금강산유람록/ 평창기행편>

면재(俛齋) 이병운(李秉運)

* 이병운(李秉運, 1766-1841) ; 1797년(정조 21)에 음직(蔭職)으로 혜릉 참봉(惠陵參奉)에 제수되었고, 1809년 함창현감(咸昌縣監)을, 1820년에는 청안현감(淸安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면재집󰡕이 있다.

*▪일시 : 1796년 2월 8일~3월 21일

▪동행 : 김현규(金顯奎)

▪일정

2월 8일 : 한양 동소문-수유점(水踰店)-흘랑점(屹郞店)

3월 17일 : 반정점-횡계관(橫溪館)-월정가(月汀街)-진부창(珍富倉)-거억흘점(去億屹店)-모노령(毛老嶺)-태화관(大華館)-사초가(沙草街)

18일 : 사초가-주진(舟津)-평창읍-안현(鞍峴)-약수(藥水)-마지(麻池)-아치현(峨峙峴)-주천창(酒泉倉)-갈동(葛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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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일록(東征日錄)

< 평창부분 발췌>

17일.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았다. 아래로 굽어보니 아직 거무스레하여 검었다. 오직 쇠잔한 산과 얕은 기슭을 보니 울룩불룩한 모습이 마치 개미두둑과 같았다. 동쪽으로 바라보니 한 곳의 바다가 일렁이더니 갑자기 땅에서 붉은 기운이 반사되어 나도 모르게 마음에 드는 점이 있었다.

10리를 가서 고개 위에 도착했고, 5리를 가서 횡계관(橫溪館)을 지났으며, 30리를 가서 월정가(月汀街)에 도착해 정오에 말을 먹였다. 이곳은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汀寺)까지 20리라고 했다. 10리를 가서 진부창(珍富倉)을 지나고, 10리를 가서 거억흘점(去億屹店)을 지났다. 물가에는 돌부리가 우뚝 솟아 대를 이루고 청심대(淸心臺)라고 하였다. 20리를 가서 모노령(毛老嶺)을 지나고, 30리를 가서 태화관(大華館)을 지났으며, 10리를 가서 사초가(沙草街)에서 투숙했다.

18일. 가랑비가 종일 내렸다. 비를 무릅쓰고 출발해 10리를 가서 방림(芳林)을 지나고, 10리를 가서 배로 주진(舟津)-평창 경계이다.-을 건넜다. 10리를 가서 평창읍(平昌邑)을 지나고 안현(鞍峴)을 넘어 10리를 가서 약수(藥水)를 지나니 푸른 강과 푸른 절벽이 굽이굽이 볼만한 곳이 있었다. 10리를 가서 마지(麻池)에 도착해 정오에 말을 먹였고, 20리를 가서 배로 사천(沙川)-원주 경계이다.-을 건넜다. 10리를 가서 아치현(峨峙峴)을 넘고, 10리를 가서 주천창(酒泉倉) 관저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편집자 주) 거역흘점 -10리를 가서 진부창(珍富倉)을 지나고, 10리를 가서 거억흘점(去億屹店)을 지났다.라고 기술하는바 이곳이 거커리라고 추정 사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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