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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리 쌍굴유적에는 평창의 옛 모습이 숨겨져 있다.

 미탄면에서 국도 42번을 따라 동쪽으로 약 3㎞ 이동하면 백운삼거리에 이르게 되며,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빠지는 평창동강로를 따라 약 3㎞ 내려오면 기화2교가 나온다. 다리를 지나 600m 더 내려오는 지점 도로 왼쪽을 바라보면 기화리 쌍굴이 보인다. 이 쌍굴은 입구가 두 개이며 위쪽은 하늘굴 아래쪽은 땅굴로 불린다. 동굴 아래에선 용천수가 솟아 창리천으로 흘러드는데 이로 인해 추운 겨울에도 하천이 얼지 않는다. 이 쌍굴에 평창의 가장 오랜 과거가 숨겨져 있다. 몇 만 년의 과거가 이 동굴의 지표면에 화석으로 변하여 남아있다가 2007년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연세대학교 박물관 팀이 80여일간의 발굴 조사 끝에 이 동굴에서 지금은 한반도에서 사라진 원숭이와 코뿔이 등의 뼈화석과 구석기 시대 인류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연세대학교 박물관 팀의 유적 발굴현장으로 들어가 본다.

  쌍굴은 위쪽의 하늘굴과 아래의 땅굴로 나뉜다. 하늘굴은 동굴 입구의 크기가 너비 7m, 높이 5m의 무지개형이고 길이는 약 70m이다. 동굴 바닥의 기울기는 10도 정도로 완만하여 안으로 들어가면서 높아지며 땅굴은 동굴 입구의 크기가 너비 16m, 높이 5m이고 바닥의 기울기는 35도 정도로 동쪽으로 매우 급하게 떨어지며 두 굴은 하늘굴 15m 지점에서 이어진다.

  조사는 동굴 바닥이 편평하고 기울기가 완만한 하늘굴을 대상으로 구획을 나누어 평면도와 단면도를 작성하면서 진행되었다. 동굴의 길이가 입구에서 약 70m이지만 안쪽은 빛이 들지 않고 측량이 쉽지 않아 시굴조사에 필요한 30m 지점까지 측량하였다. 조사는 호미와 손곡괭이, 삽 등을 이용하여 파내다가 유물들이 발견되면 기록하고 사진촬영을 하고 수습하였고. 그리고 걷어낸 흙은 다시 미세한 체를 사용하여 미세한 유물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였다. 체로 걸러낸 흙은 다시 물을 부어가며 체질을 하여 아주 작은 조각도 찾아내려 시도하였다. 시굴 결과 맨 위의 석회마루을 제외하고, 7개 정도의 지층으로 구분되어 약 150cm의 퇴적 두께를 이루고 있었으며 탄소 측정연대(B.P.) 로 45,000년-58,000년 사이로 추정된다.

쌍굴에서는 석기 및 바깥돌 총 70여점, 깨진 뼈 유물 24,000점이 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석기 갖춤새는 찍개 1점, 여러면석기 1점, 긁개 2점, 밀개 1점, 망치 1점이고, 석기제작과 관련한 몸돌, 격지, 부스러기, 조각돌은 18점이다. 동굴 밖에서 들여온 자갈은 모두 46점으로 온전한 자갈이 8점, 깨진 자갈이 38점이다. 불먹은 깨진 자갈 4점이 발견되었다. 이와 함께 숯이 발굴된 점으로 미루어 동굴 안쪽에서는 불과 관련된 행위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평창 쌍굴에서 출토된 유물은 거의 대부분 깨진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온전한 상태로 나온 뼈대는 드물다. 짐승 뼈 중에 온전하게 나온 뼈대는 원숭이, 사슴 및 산양의 손목뼈와 발목뼈, 발가락뼈와 발등뼈 등 수십 점에 불과하다. 팔·다리뼈의 위·아래 끝마디 부분이 온전히 남은 뼈대도 드물다. 종 동정이 가능한 뼈 수도 289점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깨진 조각 상태로 나왔으며 그 중에는 불탄 뼈, 석기흔적을 간직한 뼈 그리고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 뼈연모도 있다.     

기화리쌍굴출토유물
기화리쌍굴출토유물

평창 쌍굴에서 종이 확인된 동물은 18종이다. 원숭이, 꽃사슴, 말사슴, 노루, 고라니, 사향노루, 산양, 코뿔이(코뿔소는 소과의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코뿔이가 더 적합한 표현이지만, 코뿔소라는 명칭이 관용어로 굳어져 보통 코뿔소라 부른다), 호랑이, 표범, 곰, 산달, 오소리, 너구리, 토끼, 박쥐, 두더지, 갈밭쥐 등의 젖먹이 짐승이다. 특히 이 땅에서 후기갱신세(지질시대 구분의 하나로 신생대 제4기의 전반의 시대. 인류가 발생하여 진화한 시대로, 빙기와 간빙기가 반복되었으며, 기원전 200만년경~기원전 1만년경 사이를 말한다) 늦은 시기까지만 살았던 지금은 한반도에서 사라진 빙하기 시대의 원숭이와 코뿔이가 발견된 것은 의미가 크다.

  동물화석으로 발견된 원숭이는 영장목 긴꼬리원숭이과(Cercopithecidae)에 속한 선사시대 종인 큰원숭이(Macaca sp. robustus)로 점말동굴, 도담금굴, 두루봉9굴, 연당 피난굴 등 우리나라 후기갱신세 동굴유적들에서 출토된 큰원숭이의 이빨들과 비슷한 크기일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멸종되고 화석으로만 발견되고 있다. 또한 같이 발굴 된 코뿔이는 9점만 발굴돼 정확한 종을 알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두 종류의 동물화석의 발견으로 유적의 연대추정과 자연환경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며, 이를 통해 지금과 당시의 기후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 기화리 쌍굴 유적의 의미

  이 동굴은 동강 최상류를 중심으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활동하였던 사냥과 살림터로 평창군의 구석기 유적이다. 평창군과 영월군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하며 하천 주변에 낮고 평평한 언덕과 충적토가 쌓여있는 지층이 곳곳에 발달해 있는 곳으로 선사시대 다양한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이 일대를 넓게 덮고 있는 석회암지대에는 많은 천연 동굴들이 분포해 있어서 선사시대 동굴 생활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동굴은 선사인류의 중요한 생활공간 중 하나였고, 지금은 선사시대 문화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특히 석회암 동굴은 동굴 안 쌓임층이 알카리성을 띠고 있어 뼈 유물을 화석화하고 오랫동안 보존하는데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 동굴 유적에서는 많은 수의 뼈 유물이 출토되며 이를 통해 과거의 기후와 동물상을 비롯하여 인류의 기원과 이동과정 그리고 문화 행위를 살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8개 지층이 확인되었으며, 이 중 4개의 지층에서 동물뼈가 수습되었고, 3개 지층에서 석기와 굴 바깥에서 들여온 석재가 출토 되었다. 석기와 굴 바깥돌, 불탄 뼈와 자른 자국을 지닌 뼈의 확인은 인류가 기화리 쌍굴을 생활공간으로 이용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자료이며, 3개의 층에서 석기와 굴 바깥돌이 확인된 점을 미루어 오랜기간 여러 차례 인류가 이 동굴을 거쳐 갔음 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찍개, 여러석면기, 긁개, 밀개, 망치, 몸돌, 격지, 부스러기, 깨진 자갈과 숯은 구석기인들이 동굴 안에서 살림과 더불어 석기 만들기까지 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출토된 물고기뼈는 후기 구석기인들의 먹거리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라 생각된다.

  평창군에서 발굴된 유적으로는 평창읍 후평리와 천동리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인 빗살무늬토기편이 지표조사로 찾아지면서 존재 가능성이 이야기 되었으며, 2007년 평창강 수계 수해복구공사와 관련하여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용항리 유적에서 신석기시대 토기편이 조사되었고, 후평리 유적과 천동리 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다수 수습되었고, 청동기시대 유적은 평창강 본류와 지류 주면 충적대지에 집중에서 분포되어 있으며, 후평리유적, 천동리유적, 마지리유적에서는 집자리, 수형, 경작유구가 함께 있는 대규모 취락이 확인되었으며 그 밖에 고인돌이 평창읍 30여기, 대화면 4기, 진부면 3기, 대관령면 1기가 분포해 있다.

  현재 기화리 쌍굴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후 출입이 불가한 상태이며, 발굴 된 유적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뼈화석과 구석기시대 뗀석기가 같이 확인되는 중요한 유적으로 향후 지속적인 조사와 체계적인 연구가 이어지면 구석기시대 자연환경 복원과 함께 석기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선사시대 유적 출토는 그 희소성을 떠나 발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보존가치를 지나는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평창군에는 기화리 쌍굴 유적과 더불어 하리 인골유적등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유물들을 소장하고 관리·전시할 시설이나 공간은 전무한 상황이다. 하리 인골 유적은 강원대 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고 그 유적이 출토된 터는 사유지로 이미 개인주택이 들어서 있다. 쌍굴유적의 유물 역시 현재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중이다. 가까운 사례를 보면 경기도 고양시의 경우 1991년 발견된 신석기시대로 추정되는 ‘볍씨’ 단 하나만으로도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라는 컨셉으로 박물관을 세웠다. 이후 국가에서 전문박물관으로 공인받았고 국내외 학술대회도 이어나가는 것은 물론 많은 관광과 체험의 공간이 되고 있다. (2014년 고양가와지볍씨 박물관 개관)

  평창군이 더욱더 발전해 나가려면 물질적인 성장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유산도시’로서의 성장과 이를 기화로 보다 다양한 관광자원으로의 활용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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