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로 쓰는 평창의 상고사

편집부 승인 2020.04.13 11:16 | 최종 수정 2020.11.24 16:11 의견 0


[기고] 새로 쓰는 평창의 상고사

평창군민신문에서는 기화리 쌍굴 유적과 평창읍하리 유적 등 평창상고사를 연재하였다. 1986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평창군에서는 그동안 많은 발굴이 이루어져 왔다. 구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살아왔던 흔적이 확인되고,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철기 시대 등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많은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역사시대 이전의 유물유적의 발굴현황과 의미들을 새겨볼 수 있는 글을 싣는다

구석기 시대 유물은1986평창읍 도돈리에서 처음 발굴되었다. 평창군의 역사와 유적제작을 위한 지표조사에서 평창읍 도돈리 평창강 북쪽 언덕에서 찍개, 찌르개, 긁개 등이 발견되어 구석기시대부터 평창에 인간이 살았음이 확인된 것이다.

또한, 2007년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 쌍굴이 발굴조사 되었다. 이 조사에서는 특히 많은 동물들의 유골화석과 뗀석기 유물등이 발굴되었다. 인근 영월에서 1989년 한반도면(2009년 서면에서 개칭) 후탄리에서 찍개, 긁개와 1995년 남면 문개실 및 남애마을에서 사냥돌을 비롯하여 양날찍개 등이 확인되어 남한강 상류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됨으로써 평창에도 구석기시대 유적 · 유물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물은 평창읍 유동리, 주진리와 후평리 일대에서 확인되었으며, 2008년에 예맥문화재연구소에 의해 평창 평창읍 평창강 수계 수해복구공사부지 내 발굴조사에서 용항리,후평리, 천동리, 응암리 신석기시대 즐문토기를 비롯해 야외노지와 수혈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의유적은 평창군은 충적지가 넓게 형성된 평창읍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다수 이루어졌으며 평창군에서 고고학적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선사시대의 폭넓은 유적이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유적은 평창읍 주진리, 유동리, 상리, 하리, 다수리, 향동리, 후평리, 임하리, 대상리, 대하리, 응암리, 도돈리, 약수리, 천포리, 천동리 여만리, 종부리, 마지리 등 평창읍 전역에서 확인되며, 특히 평창강이 감입곡류하며 형성된 하안충적대지상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다. 또한 진부면, 대화면, 용평면 등지에서 무문토기 및 공렬 토기와 석기류 그리고 고인돌 등이 확인되고 있어 이 지역에 정착한 증거를 남기고 있다.

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는 곳은 평창읍 임하리, 종부리, 응암리, 중리, 마지리, 대화면 하안미리,방림농공단지 등지이며, 타날문토기를 비롯하여 돌무지무덤, 철기시대 주거지 및 야외화덕 등이 확인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어, 평창군이 구석기 시대 남한강 상류의 인류의 첫 생활터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창군의 선사시대 유적들은 문화재의 지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변변한 표지석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다.

경기도 전곡의 선사유적은 30여회의 반복된 발굴조사를 통해 사적 제268호로 지정되어 엄청난 규모의 공원을 조성하고, 구석기 축제를 통해 관광자원화 하고 있다.

위에서 본 많은 발굴 중에 특히 중요한 두가지 발굴을 따로 살펴본다. 연세대 박물관 팀은 지난 200710월부터 20083월까지 학술발굴조사로 평창 미탄면 기화리 쌍굴을 시굴 조사 하였다.

쌍굴 중 윗굴인 하늘굴에서 인간이 먹었던 20여종의 동물의 뼈 화석이 채집되었으며, 탄소측정 연대로 45천년전(B.P. 45,000±5,000)에서 북벽 암갈색 토양층은 58천년전 (B.P. 58,000±3,000)의 년대로 시기가 추정되는 바, 구석기시대 뗀석기(타제석기)의 찍개, 여러면 석기, 뗀석기와 코뿔이, 원숭이, 꽃사슴, 사향노루, 고라니, 산양, 표범, 호랑이, 오소리, 너구리 곰, , 물고기 등 20여 종의 동물 뼈가 발굴되었다.

09-01 긁게.png
긁게

09-02 찍게.png
찍게

09-03 꽃사슴 아래턱뼈.png
꽃사슴아래턱뼈

기화리 쌍굴의 동물뼈 화석은 선사시대 유물로 현존 우리나라에는 서식하지 않는 코뿔이나 원숭이 뼈등은 학술적 또한 사료적 가치가 크고 이로서 당 시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에 고고학적으로 학술적 연구 대상이 되면서 사료적 가치도 희소하여 유형 문화재로서의 가능성도 타진해 보아야 할듯하다.

09-05 동물뼈화석.png
동물뼈 화석

09-06 사슴정강이뼈 자른자국.png
사슴정강이뼈 자른 자국

평창읍 하리 유물산포지는 하리 240-4, 240-12번지 일대로 평창강 북안에 위치한 충적지 북편 구릉인 바, 12기의 유구 중 9기의 유구에서 매장 주체부가 확인되었다. 특히 이중 2호기에서 측와장의 전신상 인골 1구와 고조선식 청동검 1. 다수의 석촉이 발굴되었다.

하리 청동기 유적은 방사성 탄소 측정 결과 (BP)2590~ 2565 전으로 기원전 590~565년 사이의 유물로 국내 가장 오래된 피장자의 인골과 함께 매납된 비파형 청동검(일명 고조선식) 청동검과 마제석검, 마제석촉, 관옥, 환옥, 적색 마연토기, 무문토기 등이 58점 발굴되었다.

이 유적에서 중요한 발굴은 2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전신상의 인골과 두 조각으로 잘린 채 묻혀 있던 고조선식 청동검이다.

9-07_하리출토비파형동검.jpg

인골의 DNA 및 치아 분석, 대퇴골 등 여러 분석 결과 20대 여성의 몽골리안 족이라 한다. 피장자는 지배계급의 신분으로 추정하여 우리나라에는 없는 모계사회의 단서는 아닐까 학계는 관심을 가지지만 필자로서는 다른 견해를 피력해본다.

평창의 유래에는 태기산 왕국 전설에서 연유하는 부족국가 체제하의 도읍일 것이라는 추정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으며, 태기산 전설의 왕궁은 사료적 근거를 가지며 맥족 국가의 지역의 연장이란 점으로, 맥족이란 택리지나 여러 곳에서 춘천을 지명하고 강릉은 예, 즉 동예라 합니다. 이러한 예, 맥은 고조선 시대 국가라고 역사책들에서는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평창의 인골의 여성은 태기산 왕국등지의 어느 부족국가의 공주가 평창으로 시집 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이러한 특이한 석실묘의 유물은 평창 최고(最古)의 유산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평창역사유물들이 평창의 위대한 자산이고 평창의 보물로서 박물관 하나가 없어서 강릉 박물관과 춘천박물관, 연세대학교 박물관 등지로 산지사방 흩어지고 타지에서 영원히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평창읍내 거의 모든 곳이

저작권자 ⓒ 평창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