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平昌歷史의 定立에서,,,>

高 柱 浩 승인 2021.07.16 16:25 | 최종 수정 2021.07.16 23:57 의견 1

< 平昌歷史의 定立에서,,,>

안녕하십니까?

본 장에서는 평창역사에 새로운 연구와 또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있는 평창역사의 문화유적들이 새로운 자료들의 발굴에 의해 새롭게 소명되어야 하는 연구를 하여 평창역사의 전반에 걸쳐서 바른 이해로 역사의 완전한 定立이 아니라 바로 세우고자하는 정립에서 사관(史觀)의 객관성이 유지되고 점검되어 올바른 역사로 다시금 창출하겠습니다.

역사는 흘러갑니다. 그래서 현재는 과거로 변하고 현재로서는 새 역사를 창출해야하는 이 마당에 과거의 역사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과거의 역사를 점지하여 그 기반위에 오늘의 역사가 창출되기에 역사는 인간 생활은 역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바 향토적 이해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역사가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오늘의 만남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오늘이 미래로 향할때 지역적인 과거의 정체성을 찾아 시대적으로 알맞게 구현하여 보다 더 풍요로운 좌표로 지향하자는 이야기 입니다.

여기에 우리 평창은 고대로부터 많은 역사를 간직한 바 그 중에 일부 역사는 문화유산으로도 길이 보전되어야 하고 또한 현대에 문화 아이콘으로도 다시 창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간 평창에는 각 고고연구원이 찾아와 역사 유물의 시굴조사를 통하여 동 역사를 과학적으로도 소명한 수 많은 리포트 보고서조차도 소식도 없이 묻히고 다만 필자의 블로그에만 존재합니다.

동 역사들은 역사의 A, B, C라 할 수 있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모든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이러한 평창 시원의 상고사는 郡의 역사로서는 물론 향토사가들에게서도 알지 못하였기에 잊혀지고 새로운 역사책에서도 그져 주진강의 상고사 유물과 지대석인 고인돌 몇 점만 장식하는 이러한 역사 기술을 이젠 좀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태백산맥의 역사를 기록하는 문화로서는 태백의 자연사 박물관이나 양구의 선사 박물관이 있습니다만 평창은 그보다 더 역사적인 유물들이 ,,, 기화리 구석기 선사유적이나 평창읍 하리의 돌널무덤(초기 적석총)에서 출토된 고인골은 고조선 청동검과 함께 출토된 우리나라 最古의 전신상 고인골이며 이 고인골의 평창의 시원의 주인으로 타 지역 같으면 이름을 짓고 제를 드리는데 이 유물은 어디로 갔는지, 어떠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참으로 야속한 평창인듯 합니다.

그리고 평창의 중요한 문화유산은 평창 아라리(아리랑)이고 이땅의 선인들의 삶의 역사임에도 이는 정선이 먼저 채 갔다고 어설픈 소리로 외면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역사의 줄기이지만 평창역사에서 소외되고 잊혀진 역사들을 찾아서 소명하겠습니다.

본 장에서 역사의 소명에서는 역사사실 자체를 객관화되는 서술로 하고 다음으로 그 이해와 감상에서는 동 역사를 이해하기위한 주변의 일반적 , 학문적 이야기와 또한 앞으로 계발할 수 있는 여러 견해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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