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제영】 題 詠 詩

高 柱 浩 승인 2021.08.23 14:24 | 최종 수정 2021.08.23 20:38 의견 0

【평창 제영】

*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평창 제영詩

산을 베개하고 골짜기에 깃들인 백성의 집들이 있는데 정탁(鄭擢)의 시에,

“산을 베개하고 골짜기에 깃들인 백성들의 집들이 있는데,

옛 고을은 몇 리에 걸쳐 쓸쓸한 모습이로구나.

세월이 오래니 이미 자취는 기와집을 봉(封)하였고,

비가 개니 아지랑이의 푸르름은 뜰에 가득하게 서린다.” 하였다.

◆ 구름을 거두니 푸른 산이 지붕 모서리에 당하였네 윤홍(尹弘)의 시에,

“비 온 뒤의 무성한 풀은 마을길에 가득하고,

구름을 거두니 푸른 산은 지붕의 모서리에 당했네.” 하였다.

(역주-윤홍)1685년(숙종 11)에 음보로 광릉참봉(光陵參奉)

◆ 흰 구름이 일만 그루의 소나무를 깊이 잠궜네[鎖] 정귀진(鄭龜晉)의 시에, “우연히 흐르는 물을 따라 근원의 막다른 곳까지 와서,

공연히 복숭아꽃 비단 물결 겹치는 것을 볼뿐.

동학(洞壑) 속의 신선의 집은 어디에 있는고.

흰 구름이 일만 그루의 소나무를 깊이 잠궜네.” 하였다.

<역주- 정귀진>

*우왕 3년(1377) 진사급제

*태종실록 17권; 사헌부 집의(執義)로 임명

*세종조(1425) 강원도 관찰사 제수

하늘이 낮아 재[嶺] 위는 겨우 석 자 높이로구나 정도전(鄭道傳)의 시에, “중원(中原)의 서기(書記)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옛 고을 쓸쓸한 옛 산의 모퉁이로다.

문 앞에 땅은 좁아서 수레 두 채를 용납할 만하고,

하늘이 낮아 재 위는 겨우 석 자의 높이로구나.

가을이 깊어 가니 벼 이삭은 모래밭에 흩어지고,

세월이 오래된 솔뿌리는 석벽에 얽혔네.

이곳의 길이 험난하기는 촉(蜀) 나라 길보다도 어려우니,

집에 돌아가는 기쁨이 금성(錦城)의 즐거움보다 났겠네.” 하였다.

구름은 위태한 봉우리를 호위하여 푸른 벽(壁)을 뚫는다 남긍(南兢)의 시에,

“노을은 경치 좋은 곳을 표시하여 돌벼랑을 덮었고,

구름은 위태한 봉우리를 호위하여 푸른 벽을 뚫는다.

말을 타고도 오히려 가는 길이 험난한 것을 노래하며,

사람을 만나면 시험삼아 돌아가 농사짓는 즐거움을 물어본다.” 하였다.

<역주- 남긍>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 이색(李穡)이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일 때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지냈으며, 민사평(閔思平)ㆍ정포(鄭誧) 등과 교유함.

바른 산 그늘의 넓고 먼 곳에 이르니 김수녕(金壽寧)의 시에,

“빨리 달리는 역마(驛馬)를 타고 머물 겨를 없어,

바로 산 그늘의 넓고 먼 곳에 이르렀다.

사마천같이 멀리 유람함은 아직 그치지 않았고,

진등(陳登) 같은 호기는 일찍이 없어지지 않았노라.

시름을 씻는 데 병에 술이 없을 수 있으랴.

기이한 것을 구하는데 도리어 상자에 글이 있구나.

이번 유람의 기절(奇絶)함이 평생에 으뜸되니,

좀 먹은 책 속의 좀벌레 같은 생활이 우습기만 하여라.” 하였다.

(편저-김.수녕(金壽寧) 1437(세종19)∼1473(성종4)1458년부터 1462년까지 함길·평안·강원·황해·충청 5도의 체찰사인 한명회(韓明澮)의 종사관이 되어 세조의 변방정책 수행에 주요한 소임을 담당하였다.

◆ 일백 가지 근심을 노성(魯城)의 봄에 흩어버리니 강희맹(姜希孟)의 시에

, “어제 일찍이 큰 재[大嶺]로부터 왔더니, 회오리바람에 의지하여 만리를 양각(羊角) 속에 돌아서 온 것 같구나. 매단 것 같은 벼랑에 끊어진 돌계단은 돌기가 겁이 나고, 고목과 창등(蒼藤)은 지척이 아득하네. 다리 밑에 이젠 이미 평탄한 길을 찾은 것을 알건만, 꿈속에는 아직도 파란 절벽을 기어오르는 꿈을 꾼다. 백 가지 시름을 노성의 봄에 흩어버리니, 술 마시며 높은 소리로 담소하여 즐겨하노라.” 하였다.

(역주-강희맹)
강희맹(姜希孟, 1424년 ~ 1483년)은 조선 초기 문신이다. 조선 좌찬성 직책을 지낸 그는 뛰어난 문장으로 유명하며 화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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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題詠>

◆ 枕山棲谷有民居。鄭擢詩.

“云云,古縣蕭條數里餘。歲久苔痕封瓦屋,雨晴嵐翠滿庭除。”

◆ 雲斂靑山當屋角。尹弘詩.

“雨餘芳草遍村蹊,云云。”

◆ 白雲深鎖萬株松。鄭龜晉詩.

“偶尋流水到源窮,空見桃花錦浪重。洞裏仙家何處是?云云。”

◆ 天低嶺上僅三尺。鄭道傳詩.

“中原書記今何方?古縣蕭條舊山角。地到門前容兩車,云云。秋深禾穗散沙田,歲久松根緣石壁。行路難於蜀道難,還家樂勝錦城樂。”

◆ 雲護危峯穿翠壁。南兢詩:“霞標異境覆丹崖,云云。騎馬猶歌行路難,逢人試問歸田樂。”

◆ 直到山陰廣漠餘。金壽寧詩.

“駸駸馹騎不遑居,云云。司馬遠遊良未已,元龍豪氣不曾除。澆愁可得樽無綠?述異還能篋有書。奇絶玆遊冠平昔,笑他蠱簡作蟫魚。”

◆ 百憂散盡魯城春。姜希孟詩.

“昨日曾從大嶺來,梯飆萬里轉羊角。懸崖絶磴怯縈紆,古木蒼藤迷咫尺。脚底已知尋坦途,夢中猶覺緣靑壁。云云,置酒高談且爲樂。”

[주-D001] 在郡 : 底本에는 “郡在”로 되어 있다. 本書 前後 敍述 套式에 根據하여 修正하였다.

[주-D002] 怯 : 《私淑齋集ㆍ次平昌壁上韻》에는 “相”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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