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일기 유교넷에서 발굴하여 번역

- 권두문 군수의 호구록을 보완하는 기록
- 아들 권주의 평창일기 발굴

전형민 승인 2021.07.12 17:54 의견 0

평창에는 지금까지 임진왜란의 기록이 권두문 군수의 호구록과 지사함장군등을 중심으로 한 응암지 등 2가지가 알려져 왔다. 본보에서 임진왜란의 기록을 정리하다가 평창일기를 유교넷에서 발굴하여 최초로 이를 번역하였다.

유교넷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관리하는 인터넷사이트로 각종 고전의 원문과 해석문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 권두문 군수의 아들인 권주의 문집에 수록된 평창일기가 유교넷에 일기류로 등재되어 있어, 이를 본보 전형민 편집인과 강병수 하빈연구소장이 번역하여 평창학의 자료로 제공하게 되었다. 아래는 유교넷에 수록된 평창일기에 관한 소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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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일기가 수록된 유교넷 HTTP://UGYO.NET

「평창일기(平昌日記)」는 권주(權(黑+主) ; 1576∼1651)의 시문집인『춘수당일고(春睡堂逸稿)』 권 1에 수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평창군수로 있던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겪으면서 체험한 사실을 기록한 일기이다. 8월 7일 아버지와 서모(庶母)와 노비들을 데리고 정동(井洞) 석굴(石窟)에 숨어 있었다. 8월 11일 난을 피한 군대를 굴에 매복하여 지키게 하였지만 결국 적의 총탄에 모두 죽고 서모는 왜적에게 욕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절벽아래에 떨어져 죽었다. 아버지와 그는 결국 포로가 되어 영월을 지나 제천까지 끌려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포로생활을 하던 중 9월 2일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비가 내림에 그 틈을 타서 탈출을 하게 되는 전말을 매우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어 마치 전쟁을 직접 겪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뒷부분에는 선조(先祖) 남천(南川) 권두문(權斗文 ; 1543~1617)의 『호구록(虎口錄)』에 실린 전쟁상황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왜적이 일반 백성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살필 수가 있다.

권주의 자는 자지(子止), 호는 춘수당(春睡堂)ㆍ모명재(慕明齋),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두문(斗文)의 아들이며 영주(榮州)사람이다. 그는 임란 때 아버지와 함께 평창임소(平昌任所)에 있다가 왜병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군대를 굴에 매복시켜 방어하다가 마침내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였다. 1605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독서와 수양에 몰두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면서 조정에서 청나라와 강화(講和)하기로 결정을 내리자 그때부터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집 이름을 모명재(慕明齋), 춘수당(春睡堂)이라 하여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병남서원(屛南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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